헤르만 헤세의 작품은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계속 안겨준다.
이번에 읽은 작품은 싯다르타. 부처를 뜻하는 고타마 싯다르타의 이야기인가? 라고 생각했으나, 그건 아니고,
싯다르타라는 인물이 깨달음을 향해 가는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
중간에 부처라는 인물은 고타마라는 호칭으로 그려진다.
그냥 가볍게 청소년 문학 읽는다 생각하고 페이지를 넘겼는데, 역시나 .. 헤르만 헤세는 천재다.
깨달음에 대한 자신의 성찰을 고스란히 소설에 녹여내고 있다.
평상시 나도 궁금했던, 하지만 깊이 생각지는 못했던, 깨달음과 인간에 대한 내용을 싯다르타의 경험을 통해 신선하게 보여준다.
뻔한 좋은 경전말씀, 성경말씀과는 다르다.
내용들이 다 훌륭하고 감동이지만, 그 중 내가 이 책에서 가장 감명깊었던 것은, 말로 전달하는 것에 대한 한계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이다.
페이지 223 : “잘 들어보게, 친구여. 진리는 항상 한쪽 면만 드러낼 수 밖에 없지. 우리는 어떤 진리의 한 면을 말할 수 있을 뿐이네. 진리가 말로 표현될 때, 그것은 단면적이고, 본래의 온전함을 잃게 되지. 온전한 원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라네. 예를 들어, 고타마께서 세상을 가르칠 때, 그는 세상을 삶과 열반, 환상과 진리, 고통과 구원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밖에 없었지. 가르침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그런 것이라네. 하지만 이 세상,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존재는 결코 일방적이지 않지, 사람도, 행동도 오직 삶이나 열반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지. 사람은 완전한 성자도, 완전한 죄인도 될 수 없네. 우리는 시간이라는 것이 진짜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지. 그러나 시간은 실재하지 않는다네, 고빈다. 나는 여러 번 이 사실을 깨달았네. 그리고 시간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세상과 영원, 고통과 행복, 선과 악의 차이도 모두 환상에 불과한 것이지.”

불경을 읽을 때, 그것은 2600년 전에 설하여 진 것이고, 또 그 후 100년즘 지나 500여명의 아라한들로 인해 완성된 것이라, 불경을 현시대적 배경으로 해석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경우가 많을텐데, 나는 그 문자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부처의 진실된 가르침을 이해해보려 하기보다, 그 문자에 가두어져서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우리가 깨달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아주 빛나는 이야기이지만, 어떤 경우는 비웃음을 사기도 한다. 그런 것이 우리가 언어의 한계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리라는 생각이 든다. 헤르만 헤세가 싯다르타를 통해 이야기하는 진리에도 언어적 한계가 항상 있음을 일깨워주고 있다.
이 외에도, 싯다르타의 여정에서 감동적이고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았다. 특히 나는 고빈다와의 대화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 책을 통해 사람이란 모두 각자 자신만의 방식과 형태로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헤르만 헤세에게 다시 감탄하는 시간이었다. 다음엔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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